정부가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앞두고 공론화와 노동조합 의견수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경제와 노동자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면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다. 이전 대상과 지역부터 언론에 흘려놓고 뒤늦게 의견을 듣겠다는 방식부터 잘못됐다. 금융노조의 가열찬 투쟁으로 뒤늦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순서부터 바로잡자. 2차 지방이전을 논하기 전에 1차 지방이전부터 철저히 검증하라.
이미 나온 성적표부터 처참하다. 지난 4월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이전한 혁신도시 지역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가족동반 이주율은 71%, 정주여건 만족도는 69.4점에 머물렀다. 수도권 집중도 해소되지 않았다. 국가통계를 보면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10년 49.3%에서 2022년 50.5%로 오히려 높아졌다. 같은 기간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도 49.3%에서 53.4%로 커졌다. 공공기관을 옮기면 수도권 집중이 완화되고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은 결과로 입증되지 못했다. 1차 이전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조차 내놓지 못하는 정부가 또다시 2차 이전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몰상식을 넘어 아집이다.
특히 금융기관은 검증되지 않은 정책의 시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금융의 경쟁력은 전문성과 인재에서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서도 1차 이전기관의 퇴사율은 이전 전 2.66%에서 이전 후 3.11%로 높아졌다. 경직된 총인건비제와 인력운용의 제약으로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공공기관에 이전 부담까지 더해놓고 우수한 청년 인재가 몰려들기를 기대하는가. 전문인력 이탈은 정책금융의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 약화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기업과 산업, 국민경제로 번진다. 결국 세계 8위까지 올라선 금융중심지 서울의 경쟁력을 정부 스스로 허무는 셈이다. '기관만 옮기면 지역이 살아난다'는 허상에 국가 금융경쟁력을 걸지 마라.
진정 지역균형발전을 원한다면 이미 이전한 기관의 정착 기반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 여전히 부족한 교통·교육·의료·주거 등 정주여건부터 개선하고, 이전기관과 지역산업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지역은행을 비롯한 지역금융의 기능과 경쟁력을 키워 지역의 기업과 청년에게 자금과 일자리가 돌아가는 구조도 만들어야 한다. 이미 이전한 기관조차 지역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또 다른 기관을 내려보내겠다는 것은 지역균형발전이 아니라 명백한 패착이다.
금융노조가 이제 와서 새롭게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5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더불어민주당과 금융노조가 체결한 정책협약에도 이미 같은 방향이 담겼다. 1차 이전기관의 운영 실태를 파악하고 실효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하기로 했으며, 금융기관 이전은 객관적인 효과 분석과 이해당사자 논의를 거치기로 했다. 지역은행 등 지역금융의 경쟁력을 강화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인가. 불과 1년 전 스스로 한 약속을 뒤집고, 평가와 보완도 없이 다시 이전부터 밀어붙이겠다는 것인가.
지난 1차 지방이전에서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사실상 정책의 '실험대상'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그 결과와 부작용조차 제대로 평가하고 바로잡지 않은 채 또다시 실패한 정책을 강행하려 한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부터 고쳐야지, 또 소를 잃겠다는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1차 이전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보완이다. 정부는 지방이전의 효과와 부작용을 전면 조사하고, 이전기관의 정주여건을 비롯한 해묵은 문제부터 해결하라. 이것이 선결되지 않는 한 2차 지방이전은커녕 그 어떤 이전 논의도 시작할 수 없다. 끝내 이를 외면하고 금융기관 이전을 밀어붙인다면 금융노조는 9월 4일 총파업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맞설 것이다.
2026년 9월 1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윤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