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금융권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해소하겠다며 간담회를 개최한다. 은행, 증권, 생명보험, 손해보험 등 14개 금융사에 대한 감독 결과와 사례, 개선 계획을 함께 발표한다는 것이다. 그간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요구해 온 금융노조는 우선 정부의 관심과 노력을 환영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실태 점검이 오비이락인지, 대통령의 '금융악마화'에 장단을 맞추기 위한 장관의 '정치쇼'인지는 의문이다.
금융노조는 1998년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불거진 후 매 해마다 지속적으로 비정규직 임금 및 처우개선을 명문화해 왔다. 금융사용자들과 산별교섭을 통해 ▲비정규직 규모 지부 노사 합의, ▲고용 차별 현황 점검 및 해소방안 합의, ▲용역·파견근로자 등 비정규직을 위한 사내근로복지기금 사용 확대 합의 등을 이끌어 냈으며,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저임금직군 임금인상률 2배(또는 기준인상률 이상) 등을 정착시켰다. 금융노사는 또한 금융산업공익재단에 기금을 노사공동으로 출연하여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실업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를 위한 사업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측은 습관처럼 금융노조의 요구에 불성실한 태도와 핑계로 요구안을 거부하거나 형식적으로 회피해 왔다. 올해에도 금융노조는 콜센터 등 비정규직의 단계적 정규직화와 노사공동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제안했으나 사측은 교섭이 진행된 5개월 내내 해당 안건들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고용노동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번 감독에서 12개 금융사업장의 기간제 및 단시간, 파견 근로자 차별 처우(7건, 21.6억 원), 불법파견(1건, 21명), 연차미사용수당 등 금품 미지급(12건, 4억 원) 등 법 위반사항으로 적발 건수는 총 62건, 그중 41건이 5개 은행(관련 기관)에서 확인되었다. 그간 노동조합의 요구에 귀를 닫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외면해 사용자들이 만들어 낸 부끄럽고 처참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모 언론사 인터뷰에 응한 현직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성과급 등은 금융노조에서 정하면 개별 은행은 자율권이 사실상 거의 없다"라는 거짓말로 정부의 '돈 잔치' 공격의 책임을 노동자 탓으로 떠넘겼다. 정작 돈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경영진과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정치권의 고래 싸움에 힘없는 노동자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간담회 시점도 의심스럽다. '주69시간 근로시간제'를 정책이라 내놓으며 노동자를 분노케 했던 고용노동부가 갑자기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난센스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통령의 '종노릇', '갑질' 발언이 있은 후 갑자기 금융회사들만 문제 삼는 것은 혹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정계 진출을 위한 충성 맹세나 포석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가히 수사권을 남발하는 검찰공화국의 고용노동부답다. 갑자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걱정하는 듯 하는 고용노동부의 태도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대책이라며 고용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 같은 잘못된 처방만 내려온 윤석열 정부의 또 다른 총선용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금융노조는 고용관계에 있어 모든 차별적 처우에 반대한다. 고용노동부가 진정으로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노동계와 적극적인 사회적 대화를 통해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공공성 있는 기관들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라. 지금과 같이 특정 산업만 표적 수사하는 방식은 국민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정치적인 공세일뿐이다.
사용자측에게도 경고한다. 금융권에 대한 비난을 애꿎은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고, 이번 감독결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모든 차별을 즉각 시정하라. 또한 금융노조에서 요구한 비정규직 및 저임금직군 사용금지 등 비정규직 비율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