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공공기관 전수조사를 통해 이전 대상 기관을 선정하고, 2027년부터 이전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 5일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는 '2차 공공기관 이전 추진현황 및 향후 계획'을 논의하며 이전 대상 예외 기준을 최소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공식화했다. 1차 이전 당시 '업무 특성'을 이유로 수도권에 잔류했던 기관들의 예외 기준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과 농협·수협중앙회 등 협동조합 중앙회까지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취지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1차 지방이전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사회적 합의도 없이 또다시 이전을 밀어붙이는 것은 정책 신뢰성과 수용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금융노조는 이를 금융노동자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로 규정한다.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총 153개 기관, 약 5만 명이 이동한 대규모 정책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10개 혁신도시 인구 증가율은 평균 3.2% 수준에 그쳤고, 부산·울산·경북 등 일부 지역은 오히려 인구가 감소했다. 수도권 인구 집중 역시 완화되지 않았고 더욱 심화됐다. 당초 기대했던 정책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없고, 공공기관이 이전하기만 하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가정은 입증되지 못했음이 명백하다. 늘어만 가는 격지근무, 주말이면 어둠에 잠기는 도시, 부족한 의료시설, 교육 황무지가 바로 혁신도시의 민낯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외면하고 2차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2차 졸속 강제 이주이며, 수많은 금융노동자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 불보듯 뻔하다.
특히 정책금융기관 이전 문제는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산업은행 부산 이전 추진 과정에서 크나큰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겪었고, 정책 수행 차질로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정책금융기관은 산업 정책과 기업 지원,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국가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며, 금융산업은 '집적효과'와 '네트워크'가 생명인 산업이다. 이러한 이유로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당시에도 정책금융기관은 '업무 특성'을 고려해 이전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특정 기관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정책금융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조건이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이 같은 판단을 뒤집고 예외 기준 자체를 최소화하겠다고 한다. 정책 환경도, 금융산업의 구조도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이를 뒤엎겠다는 것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정책금융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흔드는 무책임한 결정이다.
협동조합 중앙회 이전 추진 역시 정책적 정당성과 실효성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협동조합은 전국의 수많은 조합원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출자금으로 설립된 '민간자율조직'이며,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제7대 원칙에도 '자율과 독립'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협동조합은 이미 전국적인 영업망을 통해 지역 밀착 금융을 수행하며 지역경제 활성화 역할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적 비판에 직면할 것은 물론, 실제 지역경제에 어떤 추가 효과를 가져올지도 불투명하고 자칫 금융기관 이전 정책을 확대하는 선례로 남을 중앙회 이전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명백한 정책 실패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정부가 벌써부터 이전 대상 기관 선정 논의까지 꺼내 들고 있다. 지방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두고 공공기관 이전 정책을 서둘러 추진하는 모습은 특정 지역 표심을 겨냥한 선거용 포퓰리즘 정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가균형발전과 지방 소멸에 대해 치열한 고민 없이 무작정 지방이전만을 외치는 모습은 정치 위에 사람이 있다는 근본을 망각한 처사이다.
금융노조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무분별한 금융기관 지방이전의 위험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책 협약까지 체결하며 책임 있게 협력해 왔다. 그러나 정권 출범 이후 그 약속은 사실상 뒤집혔고 정책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협력을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돌아온 것은 일방적 정책 추진이라는 점에서 현장의 허탈감과 배신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필요할 때만 활용하고 쉽게 뒤집는다면 앞으로 어떤 협력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금융노조는 금융기관 2차 지방이전 정책을 결사 반대한다. 이미 금융노조는 지난 2월 26일 금융권 공동 대응을 위한 '지방이전 공동대응 TF'를 출범시키고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추진에 대한 조직적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정책 추진을 강행한다면 10만 금융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과 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금융노조는 국가 금융 경쟁력을 훼손하고 금융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졸속 지방 이전 추진에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2026년 3월 6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윤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