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정치권의 고질적인 표(票)퓰리즘이 또다시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국무총리실 주도로 흘러나오는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논의는 국가 금융의 심장을 도려내 표와 맞바꾸려는 파렴치한 정치적 거래다. 이는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벌이는 위험천만한 도박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권의 무도한 산업은행 이전 시도가 멈춘 지 불과 6개월 만에, 이제는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주요 금융공공기관을 선거판의 '장기알'로 내던지려 하는가.
실효성 없는 '장밋빛 환상'으로 국가 금융의 뿌리를 흔드는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과거 1차 공공기관 이전이 가져온 인구 분산 효과는 목표치의 10%에 그쳤다. 혁신도시 상가 공실률은 40%에 육박하며 매년 수백억 원의 사회적 손실을 낳고 있다. 이처럼 명백한 정책 실패를 확인하고도 표심만을 노려 금융기관 이전을 강행하는 것은 지역사회를 향한 기만이요, 무책임한 희망 고문에 불과하다. 금융은 정보와 자본, 인재가 한데 모여 시너지를 내는 집적 산업이다. 서울이 3년 연속 세계금융경쟁력지수(GFCI) 10위권을 수성한 것은 인적 자원과 인프라가 집중된 ‘집적’의 산물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정치적 이유로 금융 허브를 난도질하는 사례는 없다.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인위적 분산은 대한민국을 글로벌 금융 지도에서 영구히 퇴출시키는 행위임을 명심하라.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 공언한 국정과제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생산적 금융'의 숨통을 끊는 망국적 지방 이전 획책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정부는 10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첨단 산업을 육성하고 자본시장 혁신으로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자본과 인프라가 집중된 금융 허브를 파괴하는 순간, 펀드 운용의 효율성은 마비되고 국가 전략 산업의 혈맥은 끊길 것이다. 자본시장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면서 금융의 손발을 묶는 행태는 정책적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정부가 표방하는 '생산적 금융' 역시 실물 경제와의 밀접한 접촉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정부는 스스로의 정책 기조를 부정하는 어리석은 행보를 멈추고, 금융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 마련에 집중하라.
정책금융의 본질을 부정하는 강제 이전 시도는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폭거이자 노동자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반시장적 행위다. 중소기업 대출의 64.2%가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을 직시하라. 기업은행을 수요처와 격리하는 것은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본연의 소명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더욱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기업은행에 대해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강제 이전을 밀어붙이는 것은 시장 경제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또한 국가 전략 산업 지원의 컨트롤타워로서 실물 경제 현장을 지켜야 마땅하다. 이를 무시한 이전은 정책금융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가 경제를 뿌리째 흔들 것이다. 더구나, 정책금융의 가치를 현장에서 구현하는 주체는 결국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주거권과 삶의 기반을 고려하지 않은 강제 이전은 명백한 노동권 침해이자 반인권적 처사다. 우리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노동자의 삶을 도구화하는 어떠한 시도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작금의 지방 이전 논의는 지역 발전을 위한 고민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미래를 오직 선거 승리와 맞바꾸려는 무책임한 정치적 야합이다. 당장의 표 몇 장을 얻기 위해 대한민국 금융의 백년대계를 내던지는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당리당략을 우선시하는 배신 행위는 민심의 거센 역풍을 피할 수 없다. 금융노조 42개 지부는 굳건한 연대를 바탕으로 이 무도한 시도를 반드시 저지하겠다. 만약 선거용 포퓰리즘에 편승해 강제 이전을 끝내 강행하려 한다면, 우리는 10만 조합원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 전면 투쟁으로 맞설 것이다. 또한 다가오는 선거에서 이를 추진하는 세력에게 반드시 혹독한 책임을 묻겠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가 경제와 금융시스템을 파괴하는 금융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즉각 중단하라.
2026년 3월 27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윤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