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양대노총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케이트 라핀 국제공공노련(PSI) 아시아·태평양지역 총장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에 ILO 권고를 이행하고 공공노동자의 실질적인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전 세계 3천만 공공부문 노동자를 대표하는 국제노동계가 대한민국 공공노동자의 노동권 현실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공공노동자의 교섭권 침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오랫동안 총인건비 지침과 예산편성지침, 경영평가 기준을 통해 공공기관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면서도 교섭의 책임은 회피해 왔다.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정부는 교섭에 나서지 않은 채 일방적인 지침을 내려보내고, 각 기관의 노사가 아무리 교섭하고 합의해도 결국 그 지침을 벗어날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
이에 2022년 금융노조를 포함한 국내 노동조합은 정부가 각종 지침과 가이드라인으로 공공기관 노사의 단체교섭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공공부문 노동자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ILO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2023년 6월 한국 정부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표된 지침이 공공기관의 단체교섭에 실질적으로 개입하지 않도록 하고, 지침 수립 과정에 공공기관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완전하고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정기적인 협의 체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정부의 부당한 개입을 막고 노사의 자율적인 단체교섭을 보장하는 ILO 협약 제98호에 따라, 정부 지침으로 공공기관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또한, 한-EU FTA에 따라 양 당사국은 비준한 ILO 협약을 법과 관행에서 효과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대한민국 역시 ILO 제98호 협약을 비준한 국가로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FTA의 경제적 이익은 누리면서 같은 협정에 담긴 노동권 보호 의무는 외면해도 된다는 것인가. ILO의 권고와 국제사회와의 약속은 선택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ILO 권고가 내려진 지 3년, 한-EU FTA가 발효된 지 15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권고를 외면한 데 이어 정권이 바뀐 지금도 실질적인 노정교섭 체계와 노동조합이 정부 지침 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다. 총인건비제와 경영평가를 통한 일방적인 통제만 계속되며 공공기관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제약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구조는 금융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임금과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기업은행에서는 법에 따라 지급해야 할 임금조차 총인건비에 가로막혀 장기간 체불되는 상황이 발생했었고, 신용보증기금은 법원 판결에 따른 임금 지급이 총인건비 초과로 산정되면서 그 책임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전가됐다. 한국자산관리공사도 정부와 협의한 계획을 이행하고도 사후에 달라진 기준으로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노사합의와 법원 판결, 정부와 협의한 정책 집행마저 불이익의 근거로 삼는 총인건비제와 경영평가는 공공기관의 자율적인 교섭을 가로막고, 정부의 책임을 기관과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통제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ILO 권고에 따라 공공기관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 노동조합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노정교섭 체계를 마련하고,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공공기관 보수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법정수당과 법원 판결금, 정부 정책에 따라 발생한 인건비가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총인건비제와 경영평가 제도도 전면 개혁해야 한다. 결정권을 가진 정부가 교섭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금융노조는 정부가 지침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를 바로잡고 금융공공기관 노동자의 실질적인 단체교섭권을 쟁취하기 위해 양대노총 공공노동자들과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다.
2026년 7월 13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윤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