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책은행 3사와 농협 등 금융기관 지방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의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금융기관 이전은 국가 금융산업의 경쟁력과 정책금융의 기능은 물론 금융노동자의 삶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충분한 검증과 당사자와의 논의 없이 추진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현재의 지방이전 논의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금융노조와 체결한 정책협약의 내용과도 맞지 않는다.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금융노조는 정책협약을 통해 국제 금융경쟁력 강화를 위한 금융중심지 육성정책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무분별한 금융기관 지방이전은 국가 금융경쟁력 저하, 고객 불편, 업무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하고, 객관적인 효과 분석과 주요 이해당사자와의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쳐 국가경쟁력과 금융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은행의 기능 확대와 경쟁력 강화, 1차 이전 공공기관의 운영 실태 점검과 실효적인 지원정책, 농협의 경쟁력 강화와 기업은행의 예산·인력 자율성 개선, 금융노조와의 정기간담회 역시 추진하기로 했다.
그때의 이재명 후보, 더불어민주당과 지금의 정부·여당은 다른가. 아니면 불과 1년여 사이 대한민국 금융산업과 국가균형발전을 둘러싼 여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정부는 지금의 금융기관 지방이전 추진이 당시의 합의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정책협약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선언이 아니다. 집권 이후 정책으로 실천하기 위해 국민과 노동자 앞에서 한 약속이다.
지역균형발전의 해법이 이미 구축된 금융산업의 인프라를 물리적으로 쪼개 옮기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사람과 정보, 기업과 시장, 금융기관 간 긴밀한 네트워크에 기반한다. 금융기관을 강제로 이전할 경우 전문인력 확보와 기관 간 협업, 정책금융 수행 능력에 미칠 악영향은 불보듯 뻔하다. 그리고 그 책임은 대체 누가 질 것인가.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어느 기관을 어디로 옮길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국책은행 3사와 농협 등 금융기관의 일방적인 지방이전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금융기관의 특수성과 국가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따져 국가 금융경쟁력을 높이고 실질적인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과 금융노동자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실천하지 않는 약속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에 불과하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당장 금융기관 강제이전 논의를 중단하고 국민과 금융노동자 앞에서 한 약속의 무게를 되새기고 그 책임을 다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6년 8월 11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윤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