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근무하는 KB국민은행 도급 콜센터 상담사 240여명이 집단해고 위기에 처했다. 은행 측이 지난 10월, 콜센터 용역회사를 6곳에서 4곳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두 달만에 벌어진 일이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를 견디며 금융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동료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생업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KB국민은행은 지금까지 정규직 콜센터 외에 대전과 서울 각각 3곳씩 총 6곳의 외주 콜센터를 통해 고객의 전화상담 업무를 처리해 왔다. 그 중 대전 3곳 중 2곳이 입찰에서 탈락한 것이다. 기존에는 업체가 바뀌어도 고용 승계를 통해 일자리를 보전했지만 대전 업체 2곳이 탈락하며 240여명 노동자들의 고용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은행 측은 20여년간 보장되어 온 고용승계 문제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은행 측은 업무가 줄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용자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240여명이나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쓰다버리는 소모품처럼 내팽겨쳐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이번 입찰과 업체선정에는 국민은행 사용자들의 뿌리깊은 '반노동 정서'가 깔려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시각이다. 1위로 선정된 업체는 유일하게 노동조합이 없는 업체이고, 재계약에 실패한 업체들은 지난 10월, 진짜 사장이 책임지라며 파업에 나섰던 공공운수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많은 업체들이다. 원청인 은행이 몇 차례 파업을 실시한 콜센터 노동자들만을 골라 부당해고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금이야말로 '진짜 사장'인 KB국민은행이 책임져야 할 때다.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겠다며, 금융권 내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시정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지난 8일에는 '차별 예방 및 자율개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KB국민은행 콜센터 대량해고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비정규직 차별의 문제는 개별 사업장에게 자율적으로 맡겨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몇몇 사례를 지적해 일부 개선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비정규직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금융노조를 포함한 노동계는 불공평한 원·하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란봉투법'으로 불리우는 노조법 2·3조를 개정하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정상적인 노동권 보장과 비정상적 고용 형태를 개선하기 위한 수십년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비정규직 차별을 위한 실질적인 법안은 거부하면서 캠페인성 가이드라인만 남발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KB국민은행은 원청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콜센터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책임져야 한다. '상생금융'이라는 거창한 말로 수천억의 돈을 들여 행사와 사업을 진행하며 금융권에 대한 비난을 피하려고 할 때가 아니다. 정부도 '정치적 쇼'에 불과한 노동정책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공헌'이고 '상생금융'이다.
2023년 12월 12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박홍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