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어긋난 과징금 논의
금융당국이 은행권 ELS 판매에 대해 과징금 부과 방식을 바꾸려 한다. 판매액이나 투자원금을 기준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은행들은 자율적으로 배상 절차를 밟아 피해 복구를 진행했고,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원금 전체를 기준으로 과징금을 때리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다. 과징금은 ‘징벌’이 아니라 ‘질서 회복’이 목적이다. 실제 피해 규모보다 훨씬 큰 금액을 물리면 시장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깨지고, 앞으로 누가 자율 배상을 먼저 나서려 하겠는가. 결국 선순환은 끊기고 악순환만 남게 된다.
이중 제재는 정책 신뢰를 무너뜨린다
과징금은 합리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자율 배상을 성실히 한 경우 감경해 주겠다는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실제로 작년 2월 이복현 전 금감원장도 “배상이 책임 인정과 원상회복 조치라면 과징금 감경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잘못을 없던 일로 하자는 게 아니라,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 회복에 나선 노력을 제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투자원금 전체를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면, 이미 배상 비용을 부담한 은행들에게 또 한 번 비용을 씌우는 꼴이다. 이런 이중 제재는 정책 신뢰를 무너뜨리고, 앞으로 누구도 피해 회복에 나서지 않게 만들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어긋나는 과징금, 노동자 일자리를 위협한다
과도한 과징금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맞지 않는다. 피해 규모를 넘어선 불합리한 징벌은 한국 금융산업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해외 투자자들에게 과도한 규제 리스크를 인식시켜 금융시장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에 과도한 과징금이 현실화된다면 외국계 금융사들은 한국 시장 철수를 검토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금융노동자들의 고용 불안과 일자리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과거 외국계 은행의 소매금융 철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던 상황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과징금을 논의할 때 국제 규범의 합리성, 투자자 신뢰,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징계 경쟁보다 예방 중심 감독으로
이번 ELS 사태의 근본 원인은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감독 소홀, 금융지주의 과도한 이익 추구가 맞물린 구조적 문제다. 그런데 근본 원인은 외면한 채, 과징금만 크게 매긴다고 해서 금융사고가 예방되지 않는다. 징계만 앞세우는 접근은 지난 정권이 반복해온 ‘은행 악마화’와 다르지 않다. 지금 필요한 건 과징금 액수를 키우는 게 아니라 예방 중심의 제도 개선이다. 상품 심사, 설명 의무, 적합성 검증, 내부통제, 사후 모니터링 등 전 과정을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 과징금 확대가 아니라, 대형 금융사고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세우는 것이 금융감독의 본래 역할임을 다시 강조한다.
2025년 8월 21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김형선